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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오장환 - 병(病)든 서울

by Mr. 6 2017.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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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病든 서울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로 아침 자고 깨고 나니

이것은 나타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 부르며

이것도 하로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김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있이 몬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도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에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 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구융같이 늘어슨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모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웨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야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도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야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이...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었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었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씰개

내 눈깔을 뽑아버리랴, 내 씰개를 잡아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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