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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덩케르크와 남한산성

by Mr. 6 2017.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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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나는 곤란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본 후로 "올해 이보다 더 나은 영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는데, 그 후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나와버린 것이다. 물론 둘의 장르가 달라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곡성>이 더 낫다고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곡성>은 그 충격적인 내용만큼이나 스포일러도 범람했고, 일찍 볼 타이밍을 놓친 나는 거의 모든 내용을 익히 들어 알고서 <곡성>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이 <동주>를 능가한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아무래도 <곡성>은 정말 명작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여튼, 그래서 올해는 말조심을 했다. 나에게 2017년 최고의 영화는 <덩케르크>였으나, 앞으로 나올 기라성같은 작품은 많았고 이 작품을 능가할 수 있는 영화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처 단언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첫머리에 있는 것이 <남한산성>이었다. 저명한 실화, 엄청난 출연진, 빼어난 원작, 거대한 자본력... 스펙을 놓고 보자면 빠지는 것이 없는 작품이었다. 물론 한국 영화의 특성상 이것이 "국뽕"으로 흐르거나, 혹은 사극이 아닌 무협 영화가 된다거나 등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어 뚜껑을 열어봐야 했다.



   그래서 뚜껑을 열었고,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남한산성>은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2017년 최고의 영화 타이틀은 <덩케르크>가 쥐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올해 가장 열심히 한 SNS는 왓챠다. 왓챠에서 <덩케르크>는 5점 만점에 4.5점, <남한산성>은 4점을 받았다. 재미로 코멘트까지 옮겨보자면, <덩케르크>는 "갇힌 사람들, 구원의 차별, 통성명은 사치", <남한산성>은 "지어진 말이 참되게 울렸고, 눈빛이 굳건히 뻗었다. 감독의 감당할 무게는 무거웠으나, 영화는 그 겨울을 따라가기에 충분하였다."이다. <덩케르크>에는 대사가 굉장히 빈곤하기 때문에 문장보단 단어 위주로 사용했고, <남한산성>의 코멘트는 김훈 선생님의 문체를 흉내내봤다.


   <남한산성> 역시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 단연 돋보이는 수작이다. 조금만 더 내 기준에 맞았다면 <덩케르크>와 같은 반열에 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실화 기반, 배우 또는 감독의 스타성, 거대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갇혔다"는 상황을 다루는 점도 같다. 반면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대사량이다. <덩케르크>에서는 대사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한 데 반해서 <남한산성>은 그야말로 "썰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긴 원작을 생각했을 때 말을 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화 간 별점에 차이를 가져온 것은, 사실 이게 내가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게 만든 흥미로운 부분인데, 이것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기도 하고 차이점이기도 하다. 바로 역사적 사실에 조작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덩케르크>의 경우 영화보다 규모가 훨씬 큰 작전이었다. 해운대를 생각해보면 피서철 100만 인파가 몰렸을 때 그 넓은 해운대가 사람으로 가득차는데, 덩케르크 해변이 아무리 넓어도 40만~50만 명의 연합군이 모여있는 <덩케르크>의 영화 속 해변은 너무나도 한산했다.



   위의 흑백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해변에는 어쨌거나 더 많은 군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병력의 수를 아래 사진처럼 대폭 줄인다. 해변은 당시보다 더 한산해보인다. CG로 사람을 욱여넣지 않으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해봐도 이건 좀 한산하지 않은가.


   이 뿐만 아니라 시각적 스케일도 줄인다. 영화를 제작할 때 참고한 구축함이 배수량 약 3000톤 급이라고 하는데, 흥남철수에 사용된 상륙용 주정 메러디스 그레이 호가 대충 7600톤이라고 한다. <국제시장>에서 실물 사이즈 그대로를 고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영화 안에서도 그 배를 타고 오르려면 한참이 걸린다. 정확한 제원은 알 길이 없어도 당시 덩케르크 해변에서 철수에 사용된 구축함이 산술적으로 부피가 절반이면 배의 높이는 절반의 제곱근 쯤 될 것이라고 가정해도 배의 높이는 꽤 높았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잔교에서 평온히 계단을 내려가서 탑승하기보다는 사다리 등을 타고 올라가야 했을 것이다.




   특히 영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인 선박을 끌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장면이 감동포인트인데, 이것마저 스케일이 더 크다. 이 작전에 동원된 배가 총 900척이라고 하는데, 영화 상에서도 더 빼곡하게 감동적인 요소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배는 외롭게 항진한다.


   영화라면 보통 스케일을 키우기 마련인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히려 다운사이징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물론 이 이외에도 놀란 감독이 생략한 것이 많지만) 이동진 평론가는 "야심찬 뺄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놀란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표현하려고 한 감정, 즉 고립감과 공포, 무력감 등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빈틈을 두었음에도 그 생략이 이해가 된다. 조금 더 과장해 말하면 "아, 이래서 놀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면 남한산성에서는, 무기나 복식 등이 꽤나 역대급으로 고증이 잘 된 축에 속하지만, 반면 역사적 사실 자체에 조작을 가한다. 남한산성이 청군의 공격에 함락 직전까지 간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남한산성은 안에서 말라 죽어가고 있을지언정 적에게 성벽을 내준 일은 없다. 역사적으로는 근왕군의 존재도 희미해서 구원병을 도모할 사정이 아니었다. 김상헌은 칼로 자결하지 않는다. 목을 매었고, 그마저도 실패하고 스스로 척화신을 대표하여 청으로 압송된다. 심지어 김상헌은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 부서져야 새 길이 열린다"며 백성들을 위한 민주정 비슷한 것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척화파 김상헌이 그 상황에서 체제를 부정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와 같은 연출은 물론 영화적 구성과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병자호란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남한산성만큼 잘 알려진 원작 소설도 별로 없는 마당에 이런 변주를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영화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 그렇게 흔치 않은 일도 아니고,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영화가 소설의 부속물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약간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고 할까. 굳이 성벽을 내주지 않고도 항복할 길이 있었을 것이다.


   <덩케르크>와의 0.5점 차이는 여기서 온다. 물론 수작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정하면서도, 양적으로 다운사이징을 택한 덩케르크와, 역사적 내용을 변조하는 <남한산성>. 당연히 두 경우 모두 감독이 의도한 바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구태여 사실(史實)의 내용을 바꾸는 것을 통해 영화적 구조를 세우고 주제적 의미를 부여한다. <덩케르크>가 무위(無爲)를 통해 "느끼게" 했다면, <남한산성>은 작위(作爲)를 통해 "부여한" 것이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남한산성은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될 수도 있을 법도 하고, 내 뇌피셜에 의한 순위 따위와는 상관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물론 웃음기 없이 건조한 점이 호불호를 가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 나는 <남한산성>에 대해 이렇게 오랜만에 장문의 글을 쓰게 만들 정도로 괜찮게 봤다. 다들 손에 손 잡고 <남한산성> 보러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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