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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메갈리아와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소고

by Mr. 6 2016.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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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페이스북에서 <TIME>지 페이지를 구독합니다. 북한 목함지뢰 도발 때였을 겁니다, 그 때 <TIME>지 페이지에도 거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고, 꽤 많은 좋아요를 얻은 호주인의 댓글이 기억납니다. "왜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우지 않나? 겁쟁이들만 모인 모양이군." 거기다가 저는 댓글을 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은 전쟁할 능력이 되고, 의지도 있다. 나 역시 군복무를 한 입장으로서 우리 가족과, 친구들과,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더없는 명예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휘두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치유되는 마술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라구요.


   때로는 싸우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용기는 싸우지 말자고 이야기 할 때 나옵니다. 싸우지 말자는 주장은 싸우자는 주장보다 훨씬 인기를 얻기가 힘듭니다. "싸우자!"라는 말에는 깃발처럼 명료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좋게 풀리면 혁명이 일어나고(물론 혁명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다칩니다.), 나쁘게 풀리면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납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신념에 크게 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신념과 많이 다를 겁니다. 그러나 "틀린" 의견인지에 대해서는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과 제가 "다른 편"에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 사건을 애도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또 어머니가 있고 딸자식이 있을 아주 평범한 남성의 한 명으로서 당신의 운동을 지지하며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100가지를 공감하면서도 1가지 '직언'을 올릴 말씀이 있어서 이 글을 씁니다.


   마케팅 용어 중에 AIDMA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그 물건을 광고 등에서 인지(Attention)하고, 관심(Interest)을 가지고, 물건을 사야겠다는 욕구(Desire)를 가지고, 그 제품을 기억(Memory)해 두었다가, 그 제품을 실제로 구매(Action)한다는 이야기지요. 이 도식은 최근 미디어의 발달로 검색(Search)와 공유(Share)를 중시하는 AISAS 등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이나, 이 모델이나 저 모델이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메갈리아는 훌륭했습니다. 여성혐오라는 문제를 사람들이 '인지'하고, 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요. 어쩌면 거기서 여성혐오라는 현 상태를 변혁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는 사람들을 많이 낳았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변혁은 인지, 관심, 욕구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변화(Action)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특히나 남성들의 연대를 촉구하기 위해서 당신들은 일부 극성 남혐러를 용기 있게 배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가 변화할 때에, 사람들이 그 변화에 어느정도로 공감(depth)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동의하는 사람의 숫자(population)라고 생각합니다. 마오쩌둥이 한 줌 모래알 같은 당원들로 시작해서 공산혁명을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눈에 보이는 숫자인 '당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공감하는 일반 민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중들은 대장정을 따라 나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밥 한 공기, 담배 한 가치 정도는 제공하면서 그들을 응원할 수 있었습니다. 대장정에 한 명이 따라오는 것보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이렇게 기반이 탄탄해진 이후에야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이깁니다.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여초사이트의 구조는 극단으로 흐를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지 않는 것이지요. 저는 얼마 전 "파리 테러때 죽은 유럽인들 불쌍하다. 한남충들이 가서 죽었어야 했는데."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는 "세종대왕 한남충 ㅡㅡ 성병 캐리어"라는 글도, "안중근 의사 사형당해서 다행이다. 남자 인구 한 명 줄었으니까."라는 글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메갈리아 내에서 소수인지, 다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메갈리아와, 이번 추모의 벽을 주도한 '워마드'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물론 반대파의 조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시글이라도 댓글에 자정작용이 보이는 경우는 아주 적었습니다. "비판"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는 아무리 크고 맑은 물이어도 언젠간 썩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닌데."라는 댓글이 그들 커뮤니티에 달렸을 때, "여기 잦빨러 하나 추가요"라는 조롱과 욕설이 달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일부 여성들이라구요? 우리도 일베는 "일부"로 취급하는 동시에 또한 배격합니다. 그 쪽의 "일부"는 어떤 점이 다르기에 쉴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나요.


   남성과 여성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권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여성의 편에서 생각해달라구요? 당신이 생각할 때는 얼마나 만족스러우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러고 있습니다.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이 운동이 성공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 이렇게 기다란 글을 쓰지 않습니다. 여성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굳이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방식대로 당신들이 겪게 될 타락에, 당신들이 실망하게 될 운동의 결과에 대해서 "예민"한 것 뿐입니다. "이대로 가면 안되는데"라는 문제의식의 발로이며, "더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조언 정도로 받아들여주시면 안 될까요? 냉정해 보이실 수 있습니다만, 예,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의 입장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길 원합니다. 당신과 공감하고 연대하려 노력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메갈리아라는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성들을 욕하면서 남성들에게 연대와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물을 끓이면서 동시에 얼음을 들이붓는 것과 같습니다. "남성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시위를 해라"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격렬하게 투쟁을 하셔도 결국에 남성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끝까지 투쟁했다는 자존감을 원하십니까?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는 명예를 원하십니까? 그러나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당신은 10년 후에도, 또는 당신 이후의 세대에서도 상황은 지금처럼 답답하고 슬플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가 있습니다. 간디와 네루가 있습니다. 명예 혁명과 청교도 혁명이 있습니다. 각각 평화적인 방법과 폭력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변혁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전자들(MLK, 간디, 명예혁명) 떠올리는 사람이 10명이라면, 후자들(말콤 엑스, 네루, 청교도 혁명)이 떠오르는 사람은 2~3명 정도는 될까요. 저는 이 사건의 해결책으로 이 전자들을 떠올린 것 뿐입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말콤 엑스와, 네루와, 청교도 혁명이 아무 가치가 없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과 같은 문제의식에 당신과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 부분이 불편하시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긴 글이고 여기서 뒤로 가기를 누르기에는 너무 멀리 온 거겠죠. 당신들이 결국엔 끝까지 다 읽으실 거 압니다. 계속해볼게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에서, 마틴 루터 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절박성을 간과하고, 흑인의 결의를 과소평가한다면, 우리나라는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흑인의 정당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이번 여름의 무더위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과 같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흑인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인정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 수준에서 그만두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나라가 예전처럼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 연설 [I Have a Dream]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세계를 바꾼 연설과 선언, 2006. 1. 15., 서해문집)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은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슬픔과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잔을 들이킴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향한 갈증을 해소하려고 하지 맙시다. 높은 수준의 존엄성과 규율에 입각하여 우리의 투쟁을 영원히 펼쳐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산적 저항 활동이 폭력 행위로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듭해서 강조하지만, 우리는 육체의 힘과 영혼의 힘이 서로 맞닿는 위엄 있는 수준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 연설 [I Have a Dream]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세계를 바꾼 연설과 선언, 2006. 1. 15., 서해문집)


   마틴 루터 킹은 이 투쟁을 영원히 지속시켜나가기 위해서, 또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힘차게 넘실대는" 사회를 보기 위해서, 당신에게 "사람"이 되길 주문합니다. 흑인이라는 약자의 입장에서도 그는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서 또 다른 불의에 눈 감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성별불균형론"이 "남성과 여성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이라면, 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여성이 저지르는 불의는 조금 눈감아줘!"라는 말이 아니라면, 당신과 제가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메갈리아의 등장과 활동까지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추도의 벽을 주도한 워마드 활동가의 닉네임이 "느개비후장"이라는 것까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를 절하하는 것으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 여성의 비극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슬로건들 중 하필이면 "남자들은 성재기처럼 한강에서 투신해서 죽어라!" 따위의 구호를 외쳐대는 자들에게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계적 중립"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의 "김치녀" 페이지의 팔로워 수는 15만명에 육박합니다. 그렇다면 이 15만명 중 여성혐오자가 아닌데도 '메갈리아'의 일반화된 이미지에 반감을 가지고 "김치녀" 페이지를 구독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꽤 상당수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오히려 역반응을 "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그 사이트들 내에서 벌어지는 논의가 이성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뮐라시옹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왜냐면 앞에서 말한 "위엄 있는 수준"에 도달하기는 커녕 이 논의를 가장 천박한 곳으로 떨어트린 자들 때문에요. 극성 남혐론자들은 사회 변화를 위해서 필요한 '정족수'를 오히려 깎아먹는 일을 합니다.


   당신이 메갈리안이거나, 또는 메갈리아를 옹호한다고 해서 이런 자들의 축에 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지껏 핍박받았던 당신에게 염치 없게도 균형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지껏 고통을 당해 왔던 당신에게 염치 없게도 당신의 동지를 비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제야 세상을 향해 싸울 마음이 생긴 당신에게 염치 없게도 불필요한 싸움에 대해서는 합의하고 넘어가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 흐름을 영원히 이어나가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싸움 후에 흉터가 덜 지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결국 이 긴 글을 다 읽으셨네요. 글을 마치면서, 마틴 루터 킹의 한 구절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앞날이 보다 영원하기를.


흑인 사회를 온통 뒤덮고 있는 놀랍고도 새로운 투쟁 정신이 모든 백인으로부터 불신을 받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수많은 백인 형제들이 이 자리에 참석한 사실이 입증하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과 우리의 운명이 서로 묶여 있고, 자신들의 자유가 우리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끼리만 걸어갈 수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 연설 [I Have a Dream]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세계를 바꾼 연설과 선언, 2006. 1. 15.,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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