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아직 몸도 마음도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 공정택 교육감 당선 소식에 비분강개하여 썼던 글이다. 네이트 판 순위에서 꽤 높이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따봉충의 역사가 시작된 글이라 가끔씩 보고 싶은데 판이 리뉴얼된 이후로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로 옮긴다. 오랜만에 댓글을 읽으니 재미있다.
사진 출처 : 데일리안
http://pann.nate.com/talk/119073528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기호 1번 공정택 후보가 당선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경쟁을 중시하신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 죽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고 1입니다.
저희 반 아이들중 반이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싸대기를 맞고 발로 차였습니다.
저는 그런 인격을 모독하는 폭력이 옛날 얘긴줄 알았습니다.
군대에서나 있는 일인줄 알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몇주 전에 비슷한 폭력 건으로 한 학생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신고한 학생이 잡혀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십니다.
학생들이 인권유린을 외치면 다들 코웃음칩니다.
저는 전교조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인권유린을 외칩니다.
작게 외칩니다. 학생부 선생님들께는 들리지 않도록.
누구도 저에게 두발규제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단정해보이니까' 이상으로 설명해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선생님이 학생의 싸대기를 때리는 이유를
'말을 안 들으니까' 이상으로 설명해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들로 세상 공부 한 번 자알 했습니다.
저는 국사를 좋아합니다.
국사를 넘어 역사는 모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니
국사는 서울대 필수과목으로, 서울대 갈 애들이 아니면 공부하지 않는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팍팍 깎인다는 악마의 과목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젠 다들 국사를 흥미로 공부하진 않습니다.
제 성적으로는 서울대를 가지 못합니다.
한동안 패닉에 빠져있었습니다.
고진감래라고 하지요.
쓴 맛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젠 감각이 없어진 혀라서
단 맛을 느끼지 못하는걸까요.
언제나 오는 단맛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17년동안 몸 달게 합니까.
어른들은 이런 글 쓸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게,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게 더 확실한 공부라는 건
어쩐지 제가 더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어린애의 객기인가요, 만용인가요.
인서울을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물가는 오르고 세상살이는 힘들답니다.
섬사람들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랍니다.
세계 지도가 바뀌었다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도덕 교과서에 '청소년기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기간'이라고 나와있었습니다.
성적 자체가 개개인의 정체성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고
공부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피를 말리는 고死가 아직도 열댓번은 남았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이 수능으로 통하는 길에서 좌초해버리지 않을까
끝도 없는 시험의 연속에 꿈마저 고사해버리지 않을까
저는 두렵습니다.
요전날, 저와 같은 학교를 나온 학우가 자살했습니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더군요. 밝은 아이였답니다.
형에게 듣자니 고등학교에선 빈번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 아이는 아직 고 1이었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진보(進步 :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보수(保守 :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우리나라 교육에 지킬 만한 것이 무엇이 있기에
보수가 이번 선거에서 꽃다발을 받았을까요.
학생이 보기엔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멉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이 사회는
학우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나라의 꿈나무라고 합니다.
이 사회는
학우를 밟고 일어나라고 합니다.
죽었다고 복창하고 공부나 하랍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국사를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