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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대학교 4학년생의 비트코인 단상

by Mr. 6 2017.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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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열풍이 한창이고 나 역시 작은 돈이지만 투자(혹은 투기) 중이다. 불확실한 시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잃어도 크지 않은 돈을 넣었고 원금은 이미 회수했지만 그래도 사람은 욕심의 동물인지라 수시로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워라밸보다는 코라밸을 더욱 신경써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수익금은 며칠 후로 다가온 일본 여행 갈 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지탱하는 커다란 축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다. 비록 그쪽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라서 100%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재미있는 기술이고 멀지 않은 미래에 4차 산업혁명의 추진제로 쓰일 기술이라는 것도 알겠다. 언젠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연재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투자를 하면서 경제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다시 한번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역시 경제 성장은 노동, 자본, 기술 발전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일천한 배움이지만 여태 인강을 들은 바로는 스페인어는 "알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Saber"와 "Conocer"라는 동사가 있는데, "Saber"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고, "Conocer"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어 "한국에 대해 아니?"라는 말을 할 때는 "Saber" 동사를 쓰고, "한국에 와 봤니?" 라는 말을 할 때는 "Conocer" 동사를 쓴다. 한국에 와 봐서 경험적으로 한국을 알기 때문에 "Conocer" 동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느끼는 것도 그것이다. 내가 배웠던 것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몸에 체화되는 것. 그리하여 단순히 시험을 치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는 것. 지금껏 지불했던 등록금들이 조금이나마 아깝지 않아진다. 나는 블록체인 기술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컴퓨터 공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고도의 철학, 정치학, 윤리학 등 인문학적 지식의 산물이라고 느껴진다. 애당초 이 블록체인 기술의 발화점이 된 "비잔틴 장군 문제"는 역사를 아는 사람이 낼 수 있는 비유다.


여기에 더하여 마샬 맥루한의 기술 결정론도 생각한다. 백남준 선생님이 주창하셨던 "Electronic Super-highway" 개념 역시 생각한다. 정보 교환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블록체인 기술이 소용닿는 곳이 많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완전히 규제할 수 없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기를 건전히 만들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사용될 행정학적 수단들을 생각해보고, 또 암호화폐 시장이 경제학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한다. 이 투기(혹은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행동경제학도 생각한다.


이런 복잡다단한 개념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 것인가. 우리가 자꾸 통섭을 얘기하는데, 이 모든 개념들을 생각하고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해 낸 그 사람이야말로 통섭의 인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통섭형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교육공학도 생각하게 된다. 블록체인이 아니라 띵킹체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나는 2011년 연세대학교에 논술 시험을 치러 가는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수험생들은 신촌역에서 백양로까지의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그 수천, 어쩌면 수만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PMP에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는 두번째 달의 <서쪽 하늘에>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바라보았던 모든 기억이 뮤직 비디오처럼 남았다. 어쨌든 나는 그 시험에서는 낙방하고 정시로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 때의 추억은 아직도 뿌듯하다. 내가 초, 중, 고 12년을 꽤 열심히 살아서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사학에 시험을 보러 가는구나.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일원이었다는 생각에 아직도 가슴이 뿌듯하다.




뜬금없지만 블록체인을 앞에 두고 졸업을 앞둔 지금도 그런 기분이 든다. 내가 덧없이 흘러갈 수도 있었던 4년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이 복잡하지만 중요한 기술 하나를 내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학문적 경험을 쌓았구나. 이 컴퓨터 공학의 집약체를 보면서 나의 본령이어야 할 사회과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경제학, 미학까지 떠오르는 정도라면, 그래도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었구나. 뭐 배운게 있어야 졸업을 하지 싶었는데, 이제 뭔가 졸업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에 쓸데없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제 대학에서 Saber하게 된 것들을 가지고 Conocer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것과 저것을 이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브리꼴레르"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더 공부하고 무엇을 더 체험해야 하는가. 나는 그리하여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인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면서 가졌던 고민들을 이제 학사 겸 사회인(진)의 입장에서 하려니 더욱 어렵다. 그러나,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며,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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