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허는 Brugge, 헨트는 Gent라고 쓰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이 표기는 네덜란드어 발음을 따르나보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어(일부 지방에서는 독일어)를 공용어로 쓴다. 브뤼허는 Bruges라고도 쓰는 모양인데, 함께 사는 유럽권 플랫 친구들은 브뤼제나 브뤼주, 브루게나 겐트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너 브뤼제 갔다왔어?"라고 하는걸 "브뤼셀 갔다왔어?"로 들어서 "아니? 나 브뤼허 갔다왔다니까?" 라는 대화를 여러번 하였다. 어쨌거나 편의를 위해서 명칭은 브뤼허, 헨트로 통일한다.
아침에 서두르니 꽤 여유있게 브뤼셀 중앙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진은 여전히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벨기에에는 고 패스(Go Pass)라는 것이 있다. 26세 미만의 젊은이들에게는 편도 티켓을 6유로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티켓 자판기에서도 영문이 지원되기 때문에 손쉽게 살 수 있다. 어차피 브뤼셀엔 볼 것 없으니 싸게싸게 떠나라는 뜻인 것 같다. 벨기에 철도공사에 축복을!
9시 무렵에 기차를 탔다. 벨기에 자체가 작은 나라다 보니 브뤼허 역에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고풍스러운 그림으로 벽을 채색한 브뤼허 역사.
브뤼허에선 딱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역에서 20분 정도만 걸으면 도심에 도착하는데, 가는 길도 아름답고 상쾌했다. 가는 길에 만난 귀여운 식당.
브뤼허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Grote Markt). 개인적으로 그랑플라스보다는 여기가 더욱 크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광장인 것 같다. 빅토르 위고는 브뤼허에 와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1편 참조) 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아봤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브뤼허의 종루(Belfort)다.
유럽의 어느 관광지를 가든 마차를 타고 도시 구경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브뤼허에서 가장 높은 건물.... 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시간마다 카리용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그 맑은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린다. 종루를 올라가다가 운이 좋으면 실제로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카리용을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의 경우 이렇게 망루 역할을 겸한 종루가 있는 경우가 많다.
종루 건물 안쪽의 회랑에서 바라본 풍경. 구글카메라 앱을 이용하면 핸드폰으로도 파노라마보다 더 넓은 광각을 담아낼 수 있다. 어쨌든 그 영향으로 직선인 건물이 곡선으로 보이지만, 꼬우면 DSLR도 사고 광각렌즈도 사면 된다.
가격은 정확하진 않지만 10유로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여기서도 25세 이하는 할인을 받아서 8유로에 입장권을 살 수 있었다. 종루 내의 좁은 공간 때문에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한 명이 내려오면 한 명이 올라가고 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기다리는 줄이 짧아 보여도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한다.
종루는 꽤 높고 나선형으로 생긴 계단은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여긴 종루의 중간쯤이었는데, 철창 사이로 마르크트 광장을 바라본 풍경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꽤 힘든 일인데, 터질 것 같은 허벅지를 부여잡고 끝까지 올라가 보자. 그러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데, 어느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브뤼허에 있는 운하가 살짝 보인다.
지평선 끝까지 늘어선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브뤼허는 중세 유럽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중 하나다. 중세 서유럽의 무역 · 금융 중심지로 규모가 상당했다고 한다. 2차대전의 전화(戰禍)도 피해갔기 때문에 도시가 제법 중세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 연유로 '서유럽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며 2002년에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종루니까 당연히 종이 달려있다. 현재 이 종은 실제로 울리지는 않는 것 같고, 앞서 말했듯이 카리용이라는 악기를 연주한다.
종루에서 내려와서 거리를 거닐다가 "Da Vinci"라는 아이스크림집을 발견했다. 아이스크림성애자인 나는 지체없이 들어갔고, 점원분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점원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반겨주셨다. 선택장애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보고 있노라니, 점원분은 다크초콜릿맛, 페레로로쉐맛, 밀크초콜릿맛 등 다양한 종류의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다. 원래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지만 초콜렛의 본고장에 왔으니 한번 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두 스쿱에 3유로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돌아다니다보니 정말 아름다운 식당이 보였다. 지나가던 관광객들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구경할 정도로 아름다운 가게였다. 여기 사진을 찍으려고 아이스크림까지 서둘러 먹어가면서 겨우겨우 찍었는데 도저히 그 동화속에 나오는 듯한 느낌을 살릴 수가 없다.
1시 무렵에 있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돌아간다. 종루 입장을 기다리느라 꽤 많은 시간을 소요했기 때문에 정작 시내를 둘러볼 시간은 별로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브뤼허에서 헨트까지 가는데는 30분이 걸린다.
원래 브뤼허와 헨트는 유럽 내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손에 꼽힌다고 한다. 이미 브뤼허 뽕에 취한 나는 기대를 가득 품고 헨트로 향한다.
역에서 내려서 여기서도 트램 1일권을 사서 헨트의 중심인 카렌 광장으로 왔다. 이 도시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는 않다. 건물도 칙칙하고 브뤼허에선 맑았던 날씨가 기차로 30분 왔을 뿐인데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서유럽의 날씨란...
어쨌거나 기대했던 것보단 그렇게 아름답진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브뤼허에서 좀 더 있다 와도 될 뻔 했다... 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헨트에도 역시 중세의 흔적을 담은 종루가 있는데, 그 한 켠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중세의 기사들과 병사들의 피규어를 팔고 있지만 딱히 볼 것은 없다.
카렌 광장 한 편에 있는 성 바프 대성당(Sint Baafskathedraal). 규모가 꽤 크고 웅장하다.
헨트의 가장 큰 성당이다. 얀 반 에이크의 '어린 양의 경배'를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하고 왔다.
가장 안쪽, 돌로 정교하게 조각된 난간 안으로는 십자가상이 누워있다.
카렌 광장 주변에는 별로 볼 것이 없어서 빠르게 운하가 있는 북부지구로 향한다. 가이드북을 보니 플랑드르 백작의 성에서 헨트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브뤼허에도 종루에 올랐으니 여기서도 백작성을 가보기로 한다.
물론 카렌 광장 주변에 종루가 있다. 그러나 그 칙칙한 첫인상 때문에 거기선 별로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광장에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백작의 성이 있다. 멀리서부터 이 성이 보이면 중세뽕에 취하기 시작한다.
요새의 문. 이중으로 되어 있고 바깥 성문을 뚫고 들어온 적들에게 끓는 기름 등을 퍼부을 수 있도록 안쪽 성문 위에 내려다보는 구멍이 있다. 문 안쪽에 매표소가 있다. 입장권은 10유로지만 여기도 역시 25세 이하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백작의 성 옥상에서 바라본 헨트 시내. 조도가 낮아서 칙칙하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꽤 볼만하다. 여기서부터 헨트의 인상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성내가 코스별로 짜여 있어서 코스를 따라가다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고 한 시간정도 걸린다.
성 내에는 중세의 무기들이나 고문 도구, 심지어 기요틴(머리를 담을 자루까지 달려있는 채로 전시되고... 그걸 어린 친구들이 보고 있다.) 등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집들이 이렇게 운하에 따닥따닥 붙어있다. 사진 찍기 참 좋은 도시다.
운하 주위로 군데군데 크고 작은 보트투어 선착장이 있다. 보트를 타면 역사를 설명해주시는데, 가이드분이 최소 4개 국어 이상을 하신다.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로 돌아가면서 유창하게 설명해주신다. 요금은 약 5유로 정도 되는데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보트 투어 중 만난 조각상인데, 도시를 오염시키는 천사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천사 주제에 방독면을 쓰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의 플랑드르 백작성. 운하가 해자 역할을 해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이드 분은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고 파리에 에펠탑이 있으면 헨트에는 이 성이 있다"고 하신다.
보트 안 여기 저기에 "가이드 분에게 팁을 드리는 것이 관습입니다"라고 심지어 4개 국어로 적혀져있다. 옆에 있는 부부를 따라서 2유로의 팁을 드리고 나왔지만, 팁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는 시간이었다.
보트 투어를 마치니 백작성 가는 길에 눈에 띄었던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때울 요량이었지만 어느새 헨트가 너무 좋아졌기 때문에 이곳에 온 기념으로 스테이크를 썰기로 했다. 옆에 스프처럼 보이는 건 사실 버섯 소스. 크리미한 맛이 일품이었고 고기도 보드라웠다. 인생에서 손에 꼽히는 스테이크였고 직원 분도 매우 친절하셨다.
밥을 먹고 나서 찍은 사진은 없다. 왜냐면 기차 시간이 촉박해서 굉장히 서둘렀기 때문.
브뤼셀 북역에서 돌아가는 버스를 7시 10분에 타기로 했는데 북역으로 가는 기차가 살짝 연착되어 7시 8분에 내렸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냅다 뛰었는데 다행히 버스 승객들이 짐을 싣느라 조금 늦게 출발해서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집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버스도 알 수 없는 사정으로 연착해서(...) 약 1시 정도에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정신없던 1박 2일의 여정은 끝이 났다. 브뤼셀은 소문난 잔치에 볼 것 없었고, 브뤼허는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조금 더 시간이 허락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헨트는 첫인상은 안 좋았으나 돌아가는 길에는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았다.
세상에나. 여행한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서 그림일기 느낌으로 올린 글인데 다음과 티스토리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드리고 이 글을 보시는 모두가 행복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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